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사랑이 뭔지 알기나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아버지로부터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고 사랑의 표현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아버지가 전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에게 딸 하나와 두 아들이 있습니다. 만약 제 아이들이 “우리 아버지는 전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억울할 것입니다. 엄마의 사랑 표현 방법과 다를 뿐이지 저도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은 없지만 여전히 자녀들을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비록 때로는 자식들이 아버지로부터 실망을 할지라도 말입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저는 무서워 피하기만 했던 아버지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날 저녁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날은 저의 아버지는 저의 미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무정한 분이라는 결론을 내린 슬픈 날이었습니다. 그 날 저녁 저는 고등학교 진학에 관하여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5년제 공업 전문학교에 보내달라고 졸랐고 아버지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자녀 교육에 대한 방침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대주고 딸들은 초등학교 졸업까지 시켜줄 테니 그 이후는 본인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세명의 아들과 다섯명의 딸을 둔 농부인 아버지로서는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덟 명중 둘째인 저는 동생들의 미래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대학 진학이 그토록 절박했던지 저는 아버지와 밤을 새워 논쟁을 했습니다. 물론 힘없는 제가 졌고 저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저는 그때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반드시 돈을 벌어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유학을 가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 결심의 결과가 오늘 제가 미국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에 유학을 오고 여기서 사는 것도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 때 제가 원하는 대로 아버지께서 들어 주셨다면 저는 현실에 만족하면서 한국에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스스로 개척의 길을 찾았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저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 저를 향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었는지 모릅니다.
몇 년 전에 큰 아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입니다. 저는 아들에게 학비를 대줄 수 없으니 스스로 공부할 길을 찾으라고 일렀습니다. 큰 아들은 입학허가를 받은 대학 학군단(ROTC)에 지원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4년 동안 장학금을 준다기에 지원한 것입니다. 훈련도중에 부상을 입어 ROTC 를 중단했지만 큰 아들에게는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후 큰 아들은 기숙사 사감 보조 (RA) 일을 했습니다. 여름 방학이 되어서 집에 돌아온 어느 날 그는 울먹이면서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자기처럼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공부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자기 아버지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변명해 보았자 이해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아무 말도 못했지만 스스로 학비를 조달한 것도 아버지의 깊은 사랑의 결과이었음을 깨닫는 날이 오기를 바랄뿐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이렇게 말합니다. “에브라임은 나의 귀한 아들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다. 그를 책망할 때마다 더욱 생각나서, 측은한 마음이 들어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주의 말이다" (31:20).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 잡혀가서 고생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아버지의 엄하면서도 깊은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6월 세 번째 일요일은 아버지 날입니다. 한국에는 기러기 아빠들이 많습니다. 미국에는 언어와 문화가 낯설고 사회적인 위치도 보잘것없어 자존감을 잃어버린 아버지들이 많습니다.측은하게 보이지만 이분들은 새끼들이 독립할 때까지 둥지를 떠나지 않다가 먹이잡이에 서투른 새끼들에게 자기의 몸뚱이까지 바치는 수컷 가시고기처럼 목숨도 아끼지 않을 아버지들입니다. 오는 일요일 아버지날 만이라도 위로받고 소중한 사람으로 대접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것이 온 가족과 온 세상이 행복하게 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